세상을 향한 한발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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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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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중하고 일리있는 지적과 반론과 충고는 겸허하게 받아들이나 무례하고 앞뒤없는 태클은 무통보 삭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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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방지기 | 2009/02/04 21:15 | 트랙백 | 덧글(0) 
비정규직, 외면하고 싶지만 외면해선 안 되는 단어
비정규직이란 제도는 대체 언제 생겨난 걸까.
아마도 내가 한창 좋은 대학 가겠다고 신문과 뉴스를 끊고 교과서와 문제집에 코를 박고 있을 때였을 거다.
그 당시엔 사회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느 정도냐면 논술과 면접에 필요하다고 해도 건성건성 듣고 흘리기만 할 정도였다.
그 당시의 나는 책 속의 세계, 흘러가버린 시대에 더 애정이 깊었고, 현실을 싫어하고 있었으니까.

대학에 들어오고 첫 여름방학 무렵, 비정규직보호법이 실행된다는 신문기사를 얼핏 봤다.
법규 내용이 2년동안 일한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것임을 알고, 툭 내뱉었었다.
"2년 일 시키고 서류를 바꾸면 되잖아. 이게 무슨 보호법이야."
그나마 비정규직을 해고시키면 된다는 생각까진 하지 않았지만, 제대로 돌아갈 법 같지는 않다고 생각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고쳐져야 하는 법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사회에 이전보다는 더 시선을 보내게 되면서,
400여 일을 싸우고도 본인들에게 불리한 협상내용을 알면서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뉴코아 노동조합원,
매일 서울역을 지날 때마다 보던 천막을 걷고 철탑농성에 나서고야 만 KTX 여성조합원,
죽음을 각오했다 말하며 싸움에 임했고 실제로 두 사람의 목숨이 경각에 이르기까지 했는데도 굽히지 않는 회사측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 단식을 중단한 기륭전자 여성조합원,
그들의 아픈 이야기를 이제나마 알게 되면서, 그때의 내가 부끄럽게 느껴진다.

비정규직.
옳지 않은 제도라는 데에는 모두가 공감한다.
그러나 그 제도를 개선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싸움에는 대다수가 고개를 젓는다.
꼭 폭력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느냐며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고,
소수인 노동자가 그렇게 싸운들 제도가 바뀌겠냐며 회의적인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그저 문제라고 말하기만 하고 가슴으로만 아파할 뿐,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예전의 나처럼.

옳지 않은 제도라면 바꿔야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그 바꾸는 방법이, 의회에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집회라는 방법밖에 없는데,
애꿎은 전경들만 고생한다 하고 길 막히고 소음이 심해서 주위에 많은 피해를 끼친다며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렇다면 그들을 위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외면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모두가 조금씩 양보하는 것은, 사회를 사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아닌가.
그리고 가장 힘든 상황에 처해있고 가장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을 먼저 배려하는 것 또한 굳이 말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왜 그것이 노동 문제가 되고 비정규직 문제가 되면 양보하기 힘들고 배려하기 어려운 문제가 되는 것인지.

비정규직 문제는 외면하고 덮어둘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내 일이 아니라고 외면하고 있는 동안 어느새 나 자신이 비정규직이 될 수도 있는 법이다.
모두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행동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하더라도,
남의 일이라 치부하지 말고 모든 사람들이 끊임없이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관심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되니까.



(진보생활문예 '삶이 보이는 창' 서평공모 겸 씁니다. '부서진 미래' 신청합니다.)


by 다락방지기 | 2008/09/04 21:06 | 혼잣말 | 트랙백(1) | 덧글(2) 
'대운하 반대 국민평화행진'에 다녀왔습니다

요즈음 이오공감에 안 계신 날 없는 어른이 님 글에서 이 행사를 알고 오늘 참석했습니다.

사람들은 총 300명 정도 참가했다고 합니다. 방명록을 통해 낸 숫자일테니 대충 맞으리라 생각합니다.

집결지는 청계광장 소라고둥 앞.
가보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소라고둥 바로 옆은 동아일보, 차도 건너 맞은편은 조선일보 빌딩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취재하기 그보다 편한 입장이 없을텐데도 두 신문사 소속 사진기자 한 분조차 보질 못했네요.
하긴 뭐 바랄 걸 바라야겠죠.

제가 1시 40분 즈음에 도착했는데 이미 의경들이 도착해서 폴리스라인을 치고 있더라고요.
홈페이지에서 '경찰과 협의'운운하는 글을 읽었기에 있겠구나 하긴 했지만 그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행진 진행방향은 청계천인데 반대쪽 대로변을 주욱 막고 계시더라고요.
행진 도중에도 재배치 때문인지 폭력사태 발생시 즉각 진압하기 위해서인지 2열종대로 나란히 걸었는데,
거리만 약간 떨어져 있었지 함께 행진하는 것 같아서 재밌더라고요. 사진기가 있었으면 찍어봤을텐데.

행사 자체에 대해 평가하자면, 좀 많이 어수선했습니다.
행사를 준비하시는 대운하 반대 시민연합 측에서 일손이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에요.
행진 내내 실제로 행렬을 유도하는 것은 남성 두 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중간에 행렬이 멈추기도 했고(아마 횡단보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행진 도중이나 일렬 시위 중에 구호를 외치는 것도 다 함께 하지 못하고,
스피커를 든 유도자 분들이 있는 곳에서만 산발적으로 진행됐습니다.
또한 행진까지는 무난하게 유도되었지만, 종로3가로 나가서는 인간띠 만들기를 제대로 못 하고
당시 남대문에서 열리고 있었(다고 하)던 또다른 대운하 집회로 연장되면서 마무리가 약간 흐지부지해 졌습니다.

게다가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 간에도 통일성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운하를 저지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뭉쳤지, 그 이외에는 공유부분이 거의 없어서 결속력이 극히 적은 집단이라고 할지.
단적인 예로 '안티이명박'카페 여러분.(대구경북지부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수표교에서 멈춰서 참가들 중 몇 사람이 나서서 왜 이 행진에 참가했는지 한 마디씩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중간쯤에 '안티이명박'카페에서 참가했다는 한 남성분께서 나서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로 그 분의 말을 여기 옮기고 싶지 않습니다. 반 이상이 이명박 씨를 인신공격하는 내용이었으니까요.
요약하자면 '대운하같은 정신나간 정책을 실행하려는 이명박이 대통령인 게 싫다'라고 하시더군요.

이명박 씨에게 반대하는 것은 좋지만, 그 방법은 철저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감정으로 다른 이들의 동정과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것은 상대진영에 대한 패배입니다.
반대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감정에만 의존한다면 그만큼 상대진영의 공격에 패하기 쉬워질테니까요.

어쨌든 윗분들처럼 이명박 씨가 싫어서 참가하신 분들도 계시고,
환경을 파괴하는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기 때문에 참가하신 분들도 계시고(사실 대부분이 이쪽인 듯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하등 이익이 없을 정책을 일부 계층의 이권을 위해 추진하는것이 싫어서 참가하신 분들도 계시고(저는 여기입니다),
왜 나쁜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운하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일부 계시긴 계시더군요.
이렇게 목적이 조금씩 다른데다 공통분모는 '대운하 반대'라는 작은 부분이기 때문인지
행진 내내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꽤 강하게 들었습니다.

행진이 있었던 청계천과 종로3가는 통행량이 많은 편이고,
특히 청계천은 휴일에 나들이온 가족들이 많아서 행진을 지켜보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종로3가에서 도로변에 늘어서 침묵시위할 때가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피켓을 읽어보느라 많은 운전자분들께서 행렬 앞에서 속력을 잠시 줄이시는 모습과
버스가 지나갈 때 버스 안에 앉은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가 행렬에 쏠려있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더라고요.
사람들도 역시 대운하 문제에 관심이 많구나, 다만 말을 안 하고 있을 뿐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희망사항입니다. 진실은 '뭐 저리 사람이 많아? 무슨 일 났나?'였겠죠..)
하지만 수표교 쯤을 지날 때 우리 행렬 옆을 지나치며
"저런 집회에 참가하면 하루에 5만원씩 받는다고 그러더라고...추운데 고생들 하네"
라고 동료분께 말씀하신 추정 50대 아저씨...
덕분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 선입견으로 오도하지 말아주세요.


간단하게 제 감상을 정리하자면,
또렷이 집결된 것 같지 않은 구성원이었고 시민들에게 미친 영향도 크지 않은 듯 하지만,
조중동 17면 구석쯤에 '또다시 폭력시위...'운운하는 왜곡기사가 실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늘의 행진은 의미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행진과 시위가 자주 있어서 대운하가 무효화되길 절실히 바랍니다.



참, 돌아오는데 이주노동자들도 가두행진을 하고 있더라고요.
이 나라, 참 고쳐야 할 것 많은 나라입니다. 추운데 고생 많으셨어요.


안 보셔도 상관없는 추신
by 다락방지기 | 2008/02/24 22:30 | 혼잣말 | 트랙백 | 덧글(0) 
여자의 모든 인생은 20대에 결정된다

그야말로 오랜만에 집에 와서 공부고 뭐고 잠시 쉬고(<-매우 잘못된 자세-_-)책이나 왕창 읽자며 쌓여있던 책을 한보따리 들고 내려왔지만 이 책 저 책 기웃거리기만 하고 진득하니 읽어내려간 책이 한 권도 없습니다. 집에 온지 8일이 지나도록 이래서야 문제구나 싶어서 그나마 가장 얇은 책을 골라서 훌훌 넘겨 보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실용서라고 분류되는 책이지요. 2004년에 초판 1쇄가 출판되고 2006년까지 31쇄가 출판되었으니 지금쯤 50쇄를 돌파했을지도 모르겠네요.

책의 내용은 그야말로 간단명료합니다. 그냥 표지만 봐도 이 책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20대는 이상론에 빠져 현실을 외면하고 심하면 현실을 혐오하고 부정하기까지 하는 나이지만, 30대가 되면 당신들은 스스로에게 세상을 바꿀 힘이 없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냥 흘려보낸 시간을 후회할 것이다. 따라서 현실을 바꾸려 하지 말고 현실에 순응하여 잘 살기 위해 최선을 다 해라.'

현실에 불만을 갖지 말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예로부터 기득권자의 세상에 불만을 갖고 끊임없는 비판을 제기해서 세상을 조금씩이나마 바꾸어가는 것이 젊은 층의 주된 역할이었지 않나요? 프랑스의 68혁명세대가 그러했고 우리나라의 386세대가 그랬듯이 말이에요.
그런데 자신들은 그 나이에 마음껏 불만을 갖고 비판을 제기했으면서도 자신들이 기득권에 들어가고 나서는 우리더러 조용히 하고 네 앞가림이나 잘 하고 살라는군요.

그렇게 살면 내가 편할 것이라는거야 잘 알아요.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스펙 관리하고 인맥 쌓고 자신의 소중함을 스스로 일깨우면서 '나'라는 작품을 가꾸어나가는데 열중한 사람이 성공하지 않는다면 그런 세상이야말로 이상한 세상일 테지요.
그러나 예전에는 그런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았어도 무방했는데 지금은 모두가 그런 학창시절을 보내지 않으면 안된다는 듯한 사회의 기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누구나 느끼고 있잖아요.
왜 이상한 것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 것인지 더 이상하게 여겨야 하는 것 아닐까요.
사회가 비뚤비뚤 이상한 사회라도 똑같이 비뚤비뚤 나아가면서 그 사회에 적응해 잘 살기만 하면 되는건가요.

요즘 들어 늘 하고 있던 생각을 또다시 하게 만드는 그런 책이로군요.

by 다락방지기 | 2008/02/04 21:14 | 감상 | 트랙백 | 덧글(0) 
하이에크-노예의 길
근 20일 간 사투를 벌인 책입니다. 실제 사투를 벌인 날짜를 냉정하게 따지자면...12일 정도일까요. 근데 두 달은 잡고 있었던 듯 진이 쪽 빠지는 책입니다. 사회과학분야의, 작가의 사상을 담고 있는 대표저서이기 때문인가봐요.

노예의 길-사회주의 계획경제의 진실-

신자유주의 이론의 사상적 아버지로 떠받들리고 있는 프리드리히 A. 하이에크의 대표적 저서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마무리되어갈 즈음인 1946년에 쓰여졌습니다. 당시 유럽의 사상계를 주도하고 있던 독일식 사회주의와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과 같은 전체주의를 동일시하여 맹렬히 비판(이라 쓰고 비난이라 읽고 싶은 이 마음...)하고 있으며, 사회주의의 좋은 점만 수용하자는 당시 영국의 풍조와 대공황 이후 퍼져나간 케인즈의 사회민주주의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딱 보기에 매우 어렵다는 느낌이 풀풀 풍겨나지요. 이분의 책 초입부터 시종일관 대쪽같이 제기되는 주장을 이미 한물간 유행어로 간략히 축약하면,

자유주의 킹왕짱 우왕ㅋ굳ㅋ 사회주의 즐-_-

입니다.
...........정말입니다. 이토록 초지일관 같은 말을 방향을 바꾸고 분야를 바꿔서 진득하니 반복하는 책을 저는 난생처음 접했습니다. 문화적 충격이라는 단어를 이런 경우 쓰지는...않겠지요. 네. 그러나 이분의 주장은 정말이지 그 단호함과 일관성만은 감동할 만 하더군요.

노예의 길은 총 15장에 서론과 결론이 포함되어있습니다. 목차별로 정리해가며 이분의 논리가 얼마나 일관성을 갖추고 있는지 봅시다.


서론
-글을 서술하던 46년 당시 영국의 풍토를 언급하며 그에 대해 개탄하고 있습니다. 당시 영국은 사회보장제도 등이 매우 긍정적으로 검토되고 있던 모양인데, 이러한 사회적 흐름은 몇십 년 전 독일에서 이미 나타났던 흐름이며 그로 인해 현재의 독일은 나치당이 이끄는 전체주의 국가가 되었고, 영국도 독일과 같은 노선을 밟게 될까 두렵다는 내용입니다.
1. 버려진 길
-서론의 논조와 약간 연결됩니다만, 범위가 영국에서 전 유럽으로 확대됩니다. 전체적으로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 자유주의에서 사회주의로 국가노선을 변경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으나, 유럽의 발전은 자유주의에 기반한 것이었고 앞으로도 자유주의에 기초해야만 진정한 의미의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2. 위대한 유토피아
-현재 시도되고 있는, 자유주의 기반에 사회주의의 일부 제도를 접목하여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내려는 시도는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는 서로 추구하는 '자유'의 성격이 달라 양립할 수 없는 제도이기 때문이며, 사람들이 만들어내려고 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존재할 수 없는 유토피아와 마찬가지라고 말합니다.
3.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본격적인 주장에 앞서 자신이 주장하고 싶은 바에 대한 토대를 깔기 시작하는 장입니다.
하이에크가 다루고자 하는 '자유주의'와 '사회주의'가 어떤 의미인지 개념을 정의합니다. 자유주의는 시장을 중심으로, 개인의 활동에 제약을 거의 두지 않는 것. 시장경쟁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제약이나 모든 개인에게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제약은 가능합니다. 사회주의는 공산주의, 전체주의, 계획주의 등등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4. 계획의 '불가피성'?
-'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술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계획은 불가피하다'는 주장에 대해 반박하고 있습니다. 전반부에는 기술 발전과 관련해서 '독점은 기술발전으로 인해 자생하는 것이 아니라 독점을 유도하는 정부정책(예:특허권)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주장합니다.
5. 계획과 민주주의
-계획하기 위한 전단계인 사회 전체의 여론 수렴과 모든 이가 만족하는 계획 목표 수립이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설명하고,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계획을 수립하게 되면 이와 같은 어려움 때문에 계획을 전문가나 전문 단체와 같은 소수에게 일임하자는 여론이 일게 되어, 결과적으로 특정 집단의 이익을 우선하는 계획 독재가 탄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6. 계획과 법의 지배
-자유주의 국가에서 법은 자원이 사용될 조건을 규정하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법은 자원이 사용될 목적을 규정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의 경우 정부가 자원의 사용 결과를 예측할 수 있고, 그 결과가 정부에게 유리하도록 자원이 사용될 목적을 정할 수 있어서, 독재의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주장합니다.
7. 경제적 통제와 전체주의
-일단 경제 분야의 독재가 허용되면, 경제 계획을 실행하는 단계에서 생산과 분배, 각 개인의 직업과 위치 등이 국가에 의해 결정되고, 이는 개인의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분야를 축소시켜 결과적으로 정치 분야에서도 독재가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8. 누가, 누구를?
-윗장의 연장선상에서 분배와 직업, 사회적 위치가 어떻게 결정되는가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자유주의 체제에서는 낮은 위치에서 시작한 사람도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사회적 위치가 얼마든지 변할 수 있으나, 계획경제 체제에서는 권력을 지닌 소수에 의해 그 모든 것이 결정되고 개인은 사회를 이루는 부속품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9. 보장과 자유
-사회적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데 있어 논쟁의 초점이 되는 보장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최소 수준의 의식주와 질병 혹은 사고에 대한 국가의 포괄적 사회보장, 즉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제공되며 경쟁기조를 해치지 않을 정도의 보장은 존재해야 하지만, 경쟁체제를 해칠 수 있는 그 이상의 보장(예:기술변화로 인해 퇴출되어야 할 생산분야에 대한 보장)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10. 왜 가장 사악한 자들이 권력을 잡게 되는가?
-'히틀러가 집권했기 때문에 전체주의가 사악해진 것이다'류의 주장을 정면에서 반박하는 주장입니다. 즉, 사회주의는 내부적으로 히틀러와 같은 집권자를 배출해낼 수밖에 없는 정치구조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11. 진리의 종말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계획을 달성하기 위해 선전을 통해 개인들이 국가의 계획을 자신의 목표로 여기게끔 만들며, 국가의 계획에 배치되는 의견이 나오지 않도록 모든 분야의 이론과 사상을 국가의 통제 아래에 둔다는 주장입니다. 이런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자유로운 의견 주장과 사상 발전이 이루어지지 않아 인류의 오랜 목적 중 하나인 진리 탐구가 불가능해진다고 말합니다.
12. 나치즘의 사회주의적 뿌리
13. 우리 속에 잠재된 전체주의
14. 물질적 조건과 이상적 목표들
-이 네 장에서는 나치식 전체주의를 비판하며 자유주의를 다시금 강조하고 있습니다.
15. 국제질서의 전망
-국가질서에서 더 나아가 국제질서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국제질서 또한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는 국가들로 인해 형성되어야 한다고 전제하며, 각 국가들의 의견이 동등하게 존중되는 연방제를 기초로 한 국제질서를 수립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주장에 있어 자신만의 틀을 만들고 들어가며, 그 틀 내에서 하이에크의 논리는 매우 정연합니다. 또한 하이에크가 사용하는 틀 역시 경제학을 배운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동의하는 전제들이기 때문에 하이에크의 논리에 큰 문제는 없어보입니다.

다만, 하이에크는 용어를 지나치게 혼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계획경제 체제, 전체주의 등을 모두 같은 뜻으로 사용합니다. 이 용어들은 각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분야에서 나뉘어져 사용해야 하고, 그 의미 또한 비슷하다고는 할 수 있지만 동일하다고 하기에는 약간 힘든데 말이지요.

또한, 자유주의를 규정하는 전제들은 받아들이기에 어렵지 않은 것들이지만, 사회주의를 규정하는 전제들은 지나치게 편협한 시각이라는 느낌이 드는 부분이 꽤 있습니다. 그것도 '사회주의는 당연히 이러하다'는 태도여서 껄끄럽기는 하지만 반론하기는 어려운 내용들이 대부분이고요.

그러다보니 당시 시대적 배경과 맞물려, 하이에크가 사회주의의 물결에서 자유주의를 비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유주의의 입장에서 바라본 편협한 태도를 고수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류의 주장에서 중립적 입장의 의견을 듣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쪽 편을 대놓고 옹호하는 시각은 저로서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어렵네요.



사족입니다만
by 다락방지기 | 2008/01/21 16:07 | 감상 | 트랙백 | 덧글(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