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이오공감에 안 계신 날 없는 어른이 님 글에서 이 행사를 알고 오늘 참석했습니다.
사람들은 총 300명 정도 참가했다고 합니다. 방명록을 통해 낸 숫자일테니 대충 맞으리라 생각합니다.
집결지는 청계광장 소라고둥 앞.
가보고 나서야 깨달았는데, 소라고둥 바로 옆은 동아일보, 차도 건너 맞은편은 조선일보 빌딩이 위치하고 있습니다.
취재하기 그보다 편한 입장이 없을텐데도 두 신문사 소속 사진기자 한 분조차 보질 못했네요.
하긴 뭐 바랄 걸 바라야겠죠.
제가 1시 40분 즈음에 도착했는데 이미 의경들이 도착해서 폴리스라인을 치고 있더라고요.
홈페이지에서 '경찰과 협의'운운하는 글을 읽었기에 있겠구나 하긴 했지만 그렇게 많이 올 줄은 몰랐습니다.
게다가 행진 진행방향은 청계천인데 반대쪽 대로변을 주욱 막고 계시더라고요.
행진 도중에도 재배치 때문인지 폭력사태 발생시 즉각 진압하기 위해서인지 2열종대로 나란히 걸었는데,
거리만 약간 떨어져 있었지 함께 행진하는 것 같아서 재밌더라고요. 사진기가 있었으면 찍어봤을텐데.
행사 자체에 대해 평가하자면, 좀 많이 어수선했습니다.
행사를 준비하시는 대운하 반대 시민연합 측에서 일손이 많이 부족했던 모양이에요.
행진 내내 실제로 행렬을 유도하는 것은 남성 두 분 뿐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중간에 행렬이 멈추기도 했고(아마 횡단보도 때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행진 도중이나 일렬 시위 중에 구호를 외치는 것도 다 함께 하지 못하고,
스피커를 든 유도자 분들이 있는 곳에서만 산발적으로 진행됐습니다.
또한 행진까지는 무난하게 유도되었지만, 종로3가로 나가서는 인간띠 만들기를 제대로 못 하고
당시 남대문에서 열리고 있었(다고 하)던 또다른 대운하 집회로 연장되면서 마무리가 약간 흐지부지해 졌습니다.
게다가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 간에도 통일성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대운하를 저지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뭉쳤지, 그 이외에는 공유부분이 거의 없어서 결속력이 극히 적은 집단이라고 할지.
단적인 예로 '안티이명박'카페 여러분.(대구경북지부가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수표교에서 멈춰서 참가들 중 몇 사람이 나서서 왜 이 행진에 참가했는지 한 마디씩 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중간쯤에 '안티이명박'카페에서 참가했다는 한 남성분께서 나서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별로 그 분의 말을 여기 옮기고 싶지 않습니다. 반 이상이 이명박 씨를 인신공격하는 내용이었으니까요.
요약하자면 '대운하같은 정신나간 정책을 실행하려는 이명박이 대통령인 게 싫다'라고 하시더군요.
이명박 씨에게 반대하는 것은 좋지만, 그 방법은 철저히 논리적이고 이성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감정으로 다른 이들의 동정과 공감을 이끌어내려는 것은 상대진영에 대한 패배입니다.
반대하는 이유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고 감정에만 의존한다면 그만큼 상대진영의 공격에 패하기 쉬워질테니까요.
어쨌든 윗분들처럼 이명박 씨가 싫어서 참가하신 분들도 계시고,
환경을 파괴하는 대운하 건설에 반대하기 때문에 참가하신 분들도 계시고(사실 대부분이 이쪽인 듯 했습니다),
경제적으로 하등 이익이 없을 정책을 일부 계층의 이권을 위해 추진하는것이 싫어서 참가하신 분들도 계시고(저는 여기입니다),
왜 나쁜건지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운하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일부 계시긴 계시더군요.
이렇게 목적이 조금씩 다른데다 공통분모는 '대운하 반대'라는 작은 부분이기 때문인지
행진 내내 어수선하다는 느낌이 꽤 강하게 들었습니다.
행진이 있었던 청계천과 종로3가는 통행량이 많은 편이고,
특히 청계천은 휴일에 나들이온 가족들이 많아서 행진을 지켜보시는 분들이 많더군요.
종로3가에서 도로변에 늘어서 침묵시위할 때가 가장 인상깊었습니다.
피켓을 읽어보느라 많은 운전자분들께서 행렬 앞에서 속력을 잠시 줄이시는 모습과
버스가 지나갈 때 버스 안에 앉은 모든 사람들의 눈동자가 행렬에 쏠려있는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더라고요.
사람들도 역시 대운하 문제에 관심이 많구나, 다만 말을 안 하고 있을 뿐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물론 희망사항입니다. 진실은 '뭐 저리 사람이 많아? 무슨 일 났나?'였겠죠..)
하지만 수표교 쯤을 지날 때 우리 행렬 옆을 지나치며
"저런 집회에 참가하면 하루에 5만원씩 받는다고 그러더라고...추운데 고생들 하네"
라고 동료분께 말씀하신 추정 50대 아저씨...
덕분에 힘이 쭉 빠졌습니다. 선입견으로 오도하지 말아주세요.
간단하게 제 감상을 정리하자면,
또렷이 집결된 것 같지 않은 구성원이었고 시민들에게 미친 영향도 크지 않은 듯 하지만,
조중동 17면 구석쯤에 '또다시 폭력시위...'운운하는 왜곡기사가 실릴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오늘의 행진은 의미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이런 행진과 시위가 자주 있어서 대운하가 무효화되길 절실히 바랍니다.
참, 돌아오는데 이주노동자들도 가두행진을 하고 있더라고요.
이 나라, 참 고쳐야 할 것 많은 나라입니다. 추운데 고생 많으셨어요.
이건 제가 '88만원 세대'를 읽었기 때문에 든 생각인지도 모르지만,
오늘 행진은 386을 위한 '그들만의 행사'였던 것 같기도 하네요.
참가자 중 상당수가 자녀를 동반한 30대 중반~40대 중반의 부모세대였습니다.
물론 대운하반대 시민연대 측에서 이 행진을 기획할 때부터
'온 가족이 함께하는 평화적 행진'이라는 컨셉을 유지해오긴 했지만,
88만원 세대의 시각에서 보자면
이전 군사정권에게서 민주주의를 탈환했다는 명분으로 90년대 이후 학생운동을 서서히 죽여온 386이
이제 20대는 배제한 채 자신의 자녀 세대에게 민주적 저항 자세 같은 것을 가르치며
다시 민주화 세력의 선봉에 서려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뭐 오늘 행진 하나 가지고 이런 생각까지 하는건 과대망상일 뿐이겠지요.
하지만 오늘 행진에 참여한 대학생들은 정말 다 모아봐야 50명도 안 될 수준이었어요.
진보세력을 앞장서서 지휘하기엔 많이 모자라죠.
최소한 대운하 반대 시위만이라도 더 많은 학생들이 참가했으면 하고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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