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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향한 한발짝
by 다락방지기 카테고리 최근 등록된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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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할 용기로 살라는 말을 하지 말자. 1년 전 이맘때 나는 그야말로 진이 다 빠져 멍하니 시간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내고 있었다. 고3이라는 남들 다 거쳐간다는, 지나고 나서 뒤돌아보며 '그거 아무것도 아니었어'라고 말한다는 그 문턱을 넘기가, 나로서는 그저 힘들었다. 우울증이니 슬럼프니, 내 나름대로 꽤나 겪었지만, 내 주위에는 그런 이야기 툭 터 놓고 할 대상이 없었다. 부모님은 나보다 더 많은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내 동생에게 관심이 많았다. 사실 함께 얼굴 맞대고 앉아 이야기할 시간도 없었다. 선생님은 대부분 진학 문제에 관심이 더 많았다. 매우 존경하던 한 선생님도 주저주저 얘기를 꺼냈더니 '안됐지만 어쩌겠니. 지나고 나면 다 괜찮아진다'고만 하셨다. 친구들은 더더욱 고민 상담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조금만 꺼내면 맞장구를 친다며 자기 힘든 이야기를 쏟아내기 바빴고, 그 억울하다는 말투와 말하는 내용은 정말로 나보다 저 아이가 훨씬 많은 고생을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고개를 끄덕끄덕하는 사이 나는 어느새 위로받는 입장에서 위로하는 입장이 된데다 괜한 말을 꺼냈다는 죄책감까지 지게 되었으니까. 단 한 사람, 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시던 선생님이 계셨다. 내가 제풀에 못이겨 훌쩍거리며 말 아닌 말을 풀어내면 끄덕끄덕 들어주시고 어깨를 두어 번 토닥여주시고, 한 번인가는 기분전환을 해야 풀린다며 쉬는 시간 잠깐 사이 드라이브도 시켜주시고. 그 분이 아니었으면 그 1년, 그 중에서도 후반 3개월을 버텨내기가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바라는 것은 많은 것이 아니다. 현실을 알려주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바보가 아니다. 눈 앞을 바라보기만 해도 현실을 알 수 있다. 다만 그 현실이 내게는 너무나 버겁게 느껴져 도망치고 싶은 것이다. 모두가 너만큼이나, 너보다 훨씬 힘들게 살면서도 살아가고 있다고 말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나는 행운아다. 나는 날 때부터 에이즈에 걸리지도 않았고, 목숨을 잇기 위해 커피콩을 따거나 가죽을 바느질하거나 대로변에 서서 내 자신을 팔지 않아도 된다. 멀쩡한 몸과 당장 노동시장에 나가지 않아도 될 경제적 후원을 가진 나는 가족부양과 생활비를 위해 대학을 포기하고 취직하거나 등록금을 낼 수 없어 스스로 벌기 위해 휴학하는 사람들에 비해 충분히 행운아다. 그러나 내 아래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은 내 위에 있는 사람을 바라보며 나는 불행하다고 말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어리석은 행위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바라는 것은 그저 내 말을 들어줬으면 하는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더이상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지는 이 순간, 단 한 명이라도 나의 이 부끄러운 토로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기를. 그리고 좀 더 욕심을 부린다면, 그 사람이 내 손을 잡아주며 말해줬으면 하는 것이다. 괜찮다고, 함께 힘내어 살아가자고. 사람과 사람이 모여 만들어진 이 사회가 사람들의 사회가 아닌 개인들의 사회가 된 지금, 서로 손을 잡고 서로를 의지하며 그래도 힘을 내어 살아가자고. 그렇게, 힘이 빠져 주저앉은 내게, 다정하게 힘을 북돋아 주기를. ========= 의식의 흐름기법으로 써내려갔더니 이 뭐 왤캐 긴 거지...민망합니다. 자살한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꽤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말한 적이 없고 실행해 본 적도 없으니 그렇게 절박했던 것은 아니지만, 진지하긴 했습니다. 흔들리는 저를 잡아준 것은 주위 사람들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친구들, 동생들, 부모님...내가 세상에서 없어졌다는 사실 때문에 나와는 관련 없는 곳에서 나로 인해 슬퍼할 사람들. '그런 사람이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한 회의와 괴로움을 안겨주기도 했지만, 그 생각 덕분에 지금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건지도 모릅니다. 물론, 삶에 대한 욕심이 많았기 때문에 저런 생각으로 일부러 스스로를 잡았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끝이 좋으면 좋은 것이라 생각하려고 합니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산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저런 사람들에게 '너만 힘든 줄 아느냐'고 쏘아붙여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같은 말이라도, '우리 모두 같은 슬픔을 안고 살고 있으니, 함께 이겨내자'고 말해주면 안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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